<엔젤> 프랑수아 오종 - Sense & Sexuality


혁명적이었던 누벨바그 영화가 고전이 되고, 레오 카락스의 젊은 감성이 빛을 잃고, 뤽 베송의 기교가 식상해진 현재, 프랑스에서 작가의 전통을 잇고 있는 유일한 시네아스트는 프랑수아 오종이다.

* imaginary dictionary
ozonism n. 오조니즘. 섹슈얼리티로 인생을 성찰하는 이념을 일컫는 용어. 강한 깨달음을 위해 때때로 폭력이 수반되기도 한다. 대체로 오조니스트(ozonist)들은 사회 규범을 파괴하고 도발하는 것을 농담보다 쉽게 여기며 성 정체성이 모호한 경우가 많다. 선동자는 주로 여성. 그들은 욕망에 솔직하다는 특징이 있다. 파생어는 형용사인 ozony(오종스러운).

* 기사제공_SCREEN M&B / text_하정민
* 구성_네이버 영화

6개의 테마로 관통하는 프랑수아 오종

01 Enfant Terrible “프랑스 영화의 버릇없는 아이”

“프랑스 사람들은 나를 버릇없는 아이라고 생각한다.” 스스로 말했듯이 프랑수아 오종은 프랑스 내에서 ‘프랑스 영화계의 악동’이나 ‘천재 혹은 괴짜 감독’으로 불린다. 그의 영화에는 위악적인 캐릭터와 관습을 뛰어넘는 섹슈얼리티, 불온한 욕망, 기괴한 유머가 넘쳐난다. 그의 파격과 도발은 풍부한 문화적 토양을 지닌 프랑스 영화계에서도 논쟁거리다. 영화전문지 <카이에 뒤 시네마>의 비평가이자 영화감독 티에리 주스는 “오종의 영화는 치기 어린 욕망, 오만, 유머, 밝음, 솔직함, 우아함, 시적 감성 등의 조합이다. 그동안 프랑스 영화계에서 보기 힘들었던 새로운 스타일의 영화”라고 오종의 작품을 평했다.


위반과 일탈을 일삼는 영화 스타일과는 달리 그는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성장한 모범생에 가깝다. 누벨바그가 쇠퇴기로 접어들 무렵인 1967년에 파리에서 태어난 오종은 생물학 교수인 아버지와 선생님인 어머니에게 자유로운 교육을 받았다. “어린 시절 부모님은 나에게 예술을 창조하기 위해서 온갖 종류의 공포와 폭력에 자신을 던질 줄 알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들은 어린 내가 사드의 작품을 읽는 것도, 사드가 상상력이 풍부한 작가라는 이유로 허락했다.” 오종은 8밀리 홈무비 카메라를 들고 다니면서 가족들을 촬영했던 아버지를 통해 자연스럽게 영화라는 매체를 접했다. “아버지가 촬영한 것들은 형편없었다. 하지만 내가 촬영한 것은 그럴듯해 보였다.”
카메라 앞보다 뒤에서의 작업에 매료된 오종은 파리 1대학에서 영화학을 공부하고 국립영화학교인 페미스에서 본격적으로 연출을 전공했다. 페미스를 졸업한 후 연출한 <여름 드레스>(95)는 그의 단편 중 수작으로 꼽히는 작품. 드레스를 통해 성 정체성을 찾아가는 소년을 주인공으로 한 <여름 드레스>는 로카르노영화제에서 ‘내일의 표범상’을 수상했다.


02 Sexuality “섹슈얼리티의 악동”

오종이 평단과 대중에게 ‘악동’으로 각인된 가장 큰 이유는 영화의 섹슈얼리티 때문이다. 그의 작품에는 동성애, 근친상간, 난교, 사디즘과 마조히즘이 도처에서 일어난다. <시트콤>(98)은 이러한 섹슈얼리티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작품이다. 평범해 보이는 중산층 가정은 쥐의 등장으로 부도덕하기 그지없는 쾌락에 빠져든다. 아들은 느닷없이 저녁식사 자리에서 커밍아웃을 하고, 자신의 방에서 투신해 하반신이 마비된 딸은 애인과 가학적인 섹스를 즐길 뿐 아니라 오빠와도 은밀한 관계를 갖는다. 심지어 모자간의 섹스도 등장한다. 쾌락을 위해 친구를 죽이는 <크리미널 러버>(00)의 10대 연인과, 갓 스무 살 된 소년과 위압적인 관계를 맺는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00)의 중년 신사는 또 어떠한가.

그렇다고 난잡한 섹스 파티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그의 영화에서 섹슈얼리티는 일상이다. 오종의 인물들은 어떤 상황에서든 육체와 욕망을 드러낸다. 남의 것을 탐하고(바다를 보라, 96), 지독한 상실감에 빠지고(사랑의 추억, 00), 창작의 욕망에 시달리고(스위밍 풀, 03), 죽음 앞에서 사색할 때도(타임 투 리브, 05) 인물들은 육체적 욕망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섹슈얼리티는 종종 살인과 같은 폭력으로 이어진다. <바다를 보라>의 방랑자 여인은 남의 인생을 훔치기 위해 살인을 저지르고, <시트콤>의 가족은 끝내 아버지를 죽인다. <크리미널 러버>의 섹슈얼리티도 살인과 감금 같은 폭력과 혼재된다. <스위밍 풀>의 사라 모튼(샬롯 램플링)은 살인으로 욕망의 정점을 찍는다. 이러한 폭력성에 대해 오종은 프리츠 랑의 말을 인용했다. “나는 감독이 되지 않았다면 살인자가 됐을지도 모른다. 모든 사람에게는 잠재적인 살인 욕망이 있다.”

(좌)프랑스 대표 여배우들이 등장하는 <8명의 여인들>에서 가장 매혹적인 이미지의 변주를 보여주는 배우는 이자벨 위페르다. 히스테릭한 여성에서 우아한 여신으로 변신하는 장면을 보면 그녀에 대한 오종의 편애가 느껴진다.
(우)02 <시트콤>에서 아버지가 가져온 쥐 한 마리로 인해 중산층 가정의 위선과 욕망들은 육체적 욕망이 폭로된다.

폭력적으로까지 느껴지는 그의 섹슈얼리티는 에로틱하고 선정적이기보다 우스꽝스럽고 키치적이고 때때로 처연하며 음울하다. 그에게 육체를 전시하는 것은 곧 내면을 드러내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오종이 가장 좋아하는 감독으로 꼽은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의 희곡을 영화화한 <워터드롭스 온 버닝 락>의 동성애엔 권력이나 다름없는 사랑의 속성이 배어 있다. “더 많이 사랑하는 쪽이 약자”라는 명제는 순종적인 프란츠를 고압적으로 대하는 레오폴드를 통해서 드러난다. 그리고 사랑의 교활한 본질은 프란츠와 그를 잊지 못하는 옛 여자친구 안나(뤼디빈 사니에르)의 관계를 통해 재확인된다. 어쩌면 섹슈얼리티는 위선의 증거다.


03 Mystery “오종 스토리의 원동력”

오종 역시 여느 프랑스 감독들처럼 일상을 이야기하고 내면을 파고들지만 그의 영화에는 남다른 것이 있다. 여기서 미스터리는 그의 이야기를 이끄는 가장 큰 힘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을 연상케 하는 미스터리 뮤지컬 <8명의 여인들>(02) 외에도, 오종은 자신의 모든 영화에 미스터리 요소를 집어넣었다. 그에게 삶은 미스터리다.
도발과 파격 대신 차분한 시선이 돋보이는 <사랑과 추억>에서도 오종은 미스터리를 통해 남편을 잃은 마리(샬롯 램플링)의 상실감을 파고든다. <사랑과 추억>은 휴가지에서 일어난 남편의 실종 사건으로 시작한다. 마리의 불안한 모습을 응시하던 영화는 곧 지인들과의 모임에서 남편의 근황을 전하는 마리를 보여준다. 그녀가 남편을 찾았다는 것인지 아니면 과거로 돌아간 것인지 시간적 시점이 모호하게 느껴질 때쯤, 영화는 그것이 마리가 고통 속에서 겪는 망상이었음을 드러낸다.

오종은 종종 한정된 공간에 인물을 가둔다. <시트콤>과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 <8명의 여인들>의 인물들은 집으로, <스위밍 풀>(사진)의 사라와 줄리는 별장으로 밀어 넣는다.

미스터리를 통해 인물의 심리를 탁월하게 묘사한 또 다른 영화는 <스위밍 풀>이다. 오종이 “언제나 창작욕에 시달리는 나 자신에 관한 영화”라고 고백한 <스위밍 풀>은 타인의 삶을 훔쳐보면서 영감을 얻는 작가의 집착과 욕망을 그린 일종의 스릴러다. 우연히 줄리(뤼디빈 사니에르)와 동거하게 된 사라는 그녀와 충돌하면서 위험한 욕망에 사로잡힌다. 두 여인의 갈등을 통해 일상에 잠복해 있는 극도의 긴장감을 탐색한다. 오종은 미스터리의 장치로 시간의 역순을 사용하기도 한다. <시트콤>과 <5×2>(04)는 현재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오종의 인물들은 삶의 미스터리를 해결하는 데 실패한다. 당혹스러운 현재만이 존재할 뿐이다.


04 See the Sea “바다엔 모든 것이 있다”

그의 영화에는 종종 바다가, 다양한 의미로 등장한다. <바다를 보라>에서 바다는 권태다. 아이를 돌보고 가끔 장을 보는 것 외에는 할 일이 없는 사샤는 거의 매일같이 해변에 나간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사랑과 추억>의 바다는 상실의 바다다. 마리의 남편은 그곳에서 홀연히 종적을 감춘다. 상실의 바다에서 마리가 발견한 것은 지독한 고독이다. 인간이 절대적인 고독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음을, 영화는 마지막 해변을 뛰어가는 마리의 뒷모습을 통해 보여준다.

오종에게 바다는 사랑과 욕망, 생명과 죽음, 권태와 절망, 상실과 고독을 품은 곳이다. <사랑의 추억>(좌측상단)의 마리에게 바다는 상실이고, <5X2>(우측상단)의 바다는 사랑에 빠져드는 곳이다. <타임 투 리브>(하단)의 바다는 삶과 죽음, 인생을 품는다.

<5×2>의 바다는 인생의 찬란한 순간, 사랑을 잉태했다. 질(스테판 프라이스)과 마리옹(발레 이아 브루니 테데시)의 이혼으로 시작한 영화는 갈등, 출산, 결혼, 첫 만남으로 거슬러 올라 간다. 부부였던 두 사람이 당도한 곳은 석양에 반짝이는 바닷가. 바다로 함께 걸어 들어가면서 질과 마리옹의 사랑은 시작한다.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돌아온 두 사람의 바다에는 처음의 설렘보다 마지막의 쓸쓸함이 짙게 배어나온다. <타임 투 리브>(05)의 로맹(멜빌 푸포)이 마지막으로 당도한 곳 또한 바다다. 로맹의 꺼져가는 생명과 건강한 생명력이 공존하는 바닷가의 풍경은 죽음 또한 삶의 한 부분임을 새삼 깨닫게 한다. 그곳에서 로맹은 삶을 완성한다.


05 Les Femmes “여자의 모든 것”

오종은 여성을 대부분 페르소나로 삼는다. 여성에 대한 그의 치밀한 묘사가 돋보이는 영화는 <사랑의 추억>과 <스위밍 풀>. 공교롭게도 모두 샬롯 램플링이 주연을 맡은 영화들이다. 오종의 뮤즈 중 한 명인 램플링은 젊은 시절 팜므 파탈 캐릭터를 단골로 연기했던 배우. <사랑과 추억>에서 보여준 그녀의 매력에 압도된 오종은 <스위밍 풀>의 시나리오를 쓸 때 아예 램플링을 염두에 뒀다. “나는 항상 램플링에게 평범한 역을 맡겼다. 하지만 그녀가 연기함으로써 그 캐릭터는 결코 평범해질 수 없었다. 그것이 그녀가 매력적인 이유다. 그녀의 표정은 침착하지만 그녀의 눈은 뭔가를 담고 있다.”

뮤지컬은 장르의 혼용을 즐기는 오종의 취향과 키치적 감성을 보여주는 대표적 요소.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좌)에서 네 남녀의 댄스 신을 삽입했던 오종은 <8명의 여인들>(우)에서 아예 뮤지컬 장르를 선보인다.

<스위밍 풀>에서 램플링과 함께 공연한 뤼디빈 사니에르도 오종의 오래된 뮤즈.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부터 함께 해온 사니에르는 그의 영화에서 다양한 소녀의 이미지로 변주됐다. <워터 드롭스 온 버닝 락>에서는 백치미 가득한 소녀로, <8명의 여인들>에서는 톰보이로, <스위밍 풀>에서는 강렬한 성적 매력을 가진 소녀로 등장한다. “사니에르는 무정형의 이미지다. 그녀는 어떤 캐릭터로도 변신할 수 있다.”
여인들에 대한 넘치는 사랑을 숨기지 않는 그는 아예 여성만 나오는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8명의 여인들>은 여배우를 향한 오종의 찬가다. “프랑스 유명 여배우들을 한데 모으고 싶었다”는 그의 소망대로 이 영화는 ‘프랑스 여배우’들의 화사한 카니발이며, 오종은 이들의 기존 이미지를 다양하게 변주해 8개의 욕망을 뽑아내면서도 아름다움을 살리는 것을 잊지 않는다.


06 Angel “전환점을 맞은 오종”

<엔젤>에서 에스메를 향한 엔젤의 열정적인 사랑은 집착과 자기파멸을 부른다.

<엔젤>은 오종이 <타임 투 리브>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장편영화다. 이번에도 주체는 여성이지만 이전의 작품들과는 여러 모로 다르다. 영화는 한 여인의 일대기를 담는다. 가난한 집 딸인 엔젤(로몰라 가라이)은 글쓰기 재능이 뛰어 난 여학생이지만 지나친 공상으로 학교 급우들에게 왕따를 당한다. 소설가로 성공해 지역 일대에서 가장 큰 저택에 입성하는 것을 꿈꾸던 그녀는, 실제로 그 꿈을 이룬다. 부와 명예를 거머쥔 그녀는 우연히 가난한 화가 에스메(루시 러셀)를 만나 사랑에 빠지지만, 그녀의 사랑과 욕망은 파국을 향해 나아간다.

<엔젤>의 여주인공은 창작욕에 사로잡힌 소설가라는 점에서 <스위밍 풀>의 사라 모튼과 닮았다. 영국 출신인 로몰라 가라이는 오종의 뮤즈로 새롭게 떠오른 여배우.

영국 작가 엘리자베스 테일러의 동명소설을 원작으로 한 <엔젤>은 오종 최초의 시대극이 며, 100퍼센트 영어 대사로 이루어졌다. “평소 1930~1940년대 멜로드라마의 전통을 살린 서 사극을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러던 차에 원작을 읽게 됐는데 여주인공의 격정적인 삶에 매료됐다. 마치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 오하라 같은 인물이었다.” 어떤 장르 안에서도 공식을 비틀며 파격과 도발을 일삼던 오종은 이번 영화에서 성실한 모범생처럼 1930년대 할리우드 시대극의 공식을 그대로 따른다. 쉴 새 없이 달려가는 이야기, 주인공의 격정적인 삶과 사랑, 성공과 위기, 화려한 미장센…. 오종의 단골 소재인 동성애 코드도 원작보다 강도를 낮췄다.
멜로드라마의 구조를 충실히 따른 <엔젤>은 오종의 악동 기질을 사랑했던 관객에게 생경한 작품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악취미로 가득 찬 <바다를 보라> <시트콤>을 선보였던 그가 <사랑의 추억> 같이 우아한 영화를 내놓았다는 걸 잊지 않았다면, 이번 작품으로 영역을 확장한 그의 다음 행보에 더 큰 기대를 갖게 될 것 이다. 그의 세계는 아직 닫히지 않았다.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316&page=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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