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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수 12
Dylan is not there, but He is there
토드 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는 분명 밥 딜런의 전기영화지만, 동시에 전기영화가 아니다. 단적으로, 이 영화엔 한 번도 밥 딜런이라고 불리는 인물이 등장하지 않는다. 대신 밥 딜런의 얼굴과 영혼을 6개로 쪼갠 것 같은 6명의 배우들이 각자 다른 이름으로 밥 딜런을 연기한다. 시인, 혁명가, 천재, 변절자 등 세상이 그에게 떠맡겼던 무거운 이름을 훌훌 벗어버린 밥 딜런의 여섯 분신이 <아임 낫 데어> 속에 있다.
* 아임 낫 데어_I`m Not There
<아임 낫 데어>를 간단하게 정리하자면 미국 포크 음악계의 살아있는 전설 밥 딜런의 전기영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딜런의 열성적인 팬임을 자처하는 헤인즈 감독은 일반적인 ‘전기영화’의 틀로 밥 딜런을 박제하는 대신, 나이와 성별이 다른 6명의 배우에게 각기 다른 밥 딜런의 삶을 맡긴다. 집을 나와 무작정 뉴욕으로 상경해 가수를 꿈꾸는 어린 딜런은 흑인 소년배우 마커스 칼 프랭클린이, 그리니치 빌리지에서 포크 가수로서 명성을 얻기 시작한 그가 개인적 소망과 사회적 책임감 사이에서 갈등하던 시기는 크리스천 베일이, 전통 포크 대신 포크 록을 선택했다는 이유로 팬들의 아유를 받아야 했던 시기는 여배우 케이트 블랜쳇이 연기하는 식이다. 딜런을 연기한 6명의 배우들의 호연과 ‘밥 딜런’이라는 거대한 이름에 짓눌리지 않은 헤인즈 감독의 재기 발랄한 연출 덕분에 새롭고 매력적인 전기 영화가 탄생했다.
* 기사제공_SCREEN M&B / text_박혜은
* 구성_네이버 영화
* 구성_네이버 영화
(Real Face) 밥 딜런
“나는 거기 없다.”
밥딜런은 누구인가? 이 질문에 대한 일반적인 답을 듣고 싶은, 예를 들면 출생에서 시작해 비범한 성장기를 거쳐 미국 포크 뮤직의 살아 있는 신화로 명성을 쌓기까지의 과정을 기대했던 관객에게, 토드헤인즈 감독의 <아임 낫 데어>는 지독하게 불친절하고 괴상하기 이를 데 없는 영화일 것이다. 아무런 설명 없이 시간과 공간을 오가며, 흑인 소년부터 여자까지 총 6명의 배우가 밥 딜런을 연기하는데다, 그 인물들은 자신을 ‘우디 거스리’ ‘아서’ ‘주드’ ‘로비’ ‘빌리’ ‘잭 혹은 존’이라고 소개한다. 대체 ‘밥 딜런’은 어디 있단 말인가. 영화제목처럼 그는 거기에 없는 걸까.

반면 밥 딜런의 팬을 자처하는 관객이라면 이 영화는 비록 혼란스러울지라도 이제껏 본 적 없는, 최고의 전기영화일 것이다. ‘Stuck inside of Mobile with the Memphis Blues Again’을 시작으로, ‘Moonshiner’ ‘I Want You’ ‘Like a Rolling Stone’ ‘Mr. Tambourine Man’에 이르는 밥 딜런의 대표곡으로 빼곡하게 채워진 영화는 구구절절한 내레이션 대신 음악으로 그의 삶을 읊조린다. 노래하는 음유시인이라 불렸던 딜런의 전기영화엔 더없이 적절한 선택이다. 밥 딜런을 6명의 다른 배우로 분열시킨 것 역시, 파격적인 최선책으로 이해할 수 있다. 6개의 이름은 삶의 6단계를 의미하며, 그가 영혼을 빚진 누군가 혹은 그의 음악 인생에서 가장 큰 전환점이 되었던 사건들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늘 어제와는 다른, 새로움을 향해 나아가는 그에게 하나의 얼굴을 원하는 건, 그를 6개로 나누는 것보다 이상한 일이다.” ‘딜런의 광팬’이라고 고백한 바 있는 토드 헤인즈 감독의 말은 설득력 있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노래하는 혁명가, 1970년대엔 초심을 버리고 대중주의에 편승했다는 비난과 포크 록을 창시했다는 성과를 인정받는 음악가. 하지만 스스로는 누구나 바라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하는 밥 딜런. <아임 낫 데어>에는 분명히 그가 있다. 혹시 밥 딜런을 만나고 싶지만 <아임 낫 데어>가 버거울 것 같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밥 딜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과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먼저 숙지하자. 그에게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본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 1960년대 미국 흑인 인권운동과 반전운동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노래하는 혁명가, 1970년대엔 초심을 버리고 대중주의에 편승했다는 비난과 포크 록을 창시했다는 성과를 인정받는 음악가. 하지만 스스로는 누구나 바라는 것처럼 아름다운 세상에서 자유롭게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었다고 말하는 밥 딜런. <아임 낫 데어>에는 분명히 그가 있다. 혹시 밥 딜런을 만나고 싶지만 <아임 낫 데어>가 버거울 것 같다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밥 딜런에 대한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과 밥 딜런의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을 먼저 숙지하자. 그에게로 가는 길이 훨씬 수월할 것이다.
밥 딜런의 여섯 얼굴
(First Face) 우디 by 마커스 칼 프랭클린
“난 11살, 이름은 우디 거스리. TV에 나오는 진짜 가수가 될 거예요.”
“이 기계가 파시스트를 죽인다”(This Machine Kills Fascists)라고 쓰인 기타 케이스를 들고, 흑인 소년 하나가 화물열차 칸에 무임승차한다. 자신을 ‘우디 거스리’라고 소개하는 그는 바로 어린 시절의 밥 딜런이다. 우디 거스리는 1930년대 미국 포크 음악의 아버지라 불렸던인물로, 밥 딜런을 포크 뮤직의 길로 인도한 영혼의 스승. 딜런은 자서전 <바람만이 아는 대답>에서 우디 거스리의 음악을 처음 들었을 때의 격렬한 흥분을 이렇게 전한다. “음반을 턴테이블 위에 놓고 바늘을 올려놓은 나는 놀라서 기절할 지경이었다. 숨이 막히고 땅이 갈라지는 것 같았다. 그는 너무 시적이고 멋있고 리드미컬했다. 긴장감이 넘치는 목소리는 단검과도 같았다. 축음기가 나를 들어서 방바닥에 던지는 것 같았다. 내게는 신의 출현과 같았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로버트 앨런 짐머맨’이라는 이름의 미네소타 출신의 가수 지망생이 ‘밥 딜런’이라는 이름과 정체성을 얻기까지 방랑했던 시기를, 우디 거스리라 불리고 싶었던 흑인 소년으로 대치시키는 기지를 발휘한다.

우디를 연기한 배우는 올해로 14살이 된 연기 신동 마커스 칼 프랭클린. 소년의 얼굴로 방랑하는 딜런의 영혼을 연기하는 놀라운 재주를 보여준 그는 직접 밥 딜런의 곡 ‘Tombstone Blues’를 노래하고 연주하는 음악적 재능마저 보여준다. 영화 속 우디의 여정은 딜런의 어린 시절 기억을 재구성한 것. 그는 1년에 두세 차례 동네에 들어오는 서커스를 보고 자랐고, 뉴욕으로 올라와서 영혼의 스승인 우디 거스리의 병문안을 다니곤 했다. 우디의 화물열차 무임승차는 진실의 변주. 처음으로 콜럼비아 레코드와 계약할 때 어떻게 뉴욕에 왔냐는 질문에 밥 딜런은 화물열차를 타고 왔다고 대답했지만, 실은 거짓말이었다고 한다.
(Second Face) 아서 by 벤 위쇼
“열정과 사랑을 경계하라. 그것들은 순간적이며 덧없이 지나간다.
명심하라. 누구도 당신에게 진짜 이름을 주지 않는다.”
흰 방으로 앳된 얼굴의 청년이 걸어 들어온다. 그는 입을 포함한 얼굴의 모든 근육을 동원해 “나는 냉소적인 인간”이라고 외치는듯하다. 밥 딜런의 두 번째 얼굴인 청년의 이름은 아서. ‘노래하는 시인’이라 불렸던 밥 딜런의 시인다운 면모를 부각시킨 이 인물은, 딜런이 존경해마지않던 프랑스 상징주의 시인 아서 랭보에게 이름을 빌려왔다. 그에겐 시인의 직관과 통찰력이 있다. 만약 딜런 이 노래를 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우리는 그를 문학사의 한 페이지에서 찾았을 것이다. 그의 대표곡 ‘Blowing in the Wind’와 ‘Like a Rolling Stone’은 미국 고등학교 교과서에 수록될 만큼 문학적 완성도를 인정받는 작품. 토드 헤인즈 감독이 ‘아서 랭보’를 ‘딜런’의 또 다른 이름으로 사용한 건 그리 과장된 해석은 아니다.

<아임 낫 데어>에서 아서를 연기한 벤 위쇼는 다른 배우들처럼 딜런을 연기하지 않는다. 구불거리는 옅은 갈색머리와 구부정한 자세로 상대를 치켜 보는 눈초리가 20대 초반의 딜런을 연상시킬 뿐이다. 아서의 임무는 딜런의 대변인이다. 아서는 영화 중간 툭 끼어들어와 딜런이 늘 말하고 싶었지 만 마음속에만 묻어뒀던 말에 날카로운 냉소를 얹어 ‘랭보의 시’처럼 읊는다. 딜런이 통기타를 버리고 일렉트릭 기타와 함께 포크 록을 시도했을 때 쏟아졌던 비난에 대해 아서는 “나는 카오스를 받아들였다. 내가 받아들인 게 무엇인지 분명하지 않은 게 문제라면 문제지만”이라고 논평하는 식이다.
(Third Face) 잭 by 크리스천 베일
“그들은 나를 이해해주지 않아.
그들이 원하는 건 내가 내 얼굴이 그려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서는 거라고.”
그리니치 빌리지의 한 카페 무대 위에서 기타를 치며 하모니카를 부는 남자. 사회자는 그 남자를 잭 롤린스라고 소개하지만, 관객들은 누구나 그가 ‘밥 딜런’이라는 걸 알아챌 수 있다. 제멋대로 헝클어진 갈색 곱슬머리와 소매를 걷어 붙인 셔츠만으로 크리스천 베일은 밥 딜런이 된다. 마틴 스콜세지 감독의 다큐멘터리 <노 디렉션 홈>을 원본보다 더 원본처럼 복제해놓은 헤인즈 감독의 재주도 놀랍지만, 말끝을 씹어 흘리는 듯한 밥 딜런의 목소리를 더빙해놓은 것처럼 연기하는 크리스천 베일의 연기가 더욱 놀랍다. 새로운 세대를 대변하는 포크의 얼굴, 밥 딜런. 그는 당시 모든 젊은이들처럼 좀 더 나은 세상을 원했고, 그 바람을 노래에 담았으며, 그 노래를 원하는 청중이 있다면 어떤 무대도 마다하지 않았다.

딜런의 음악이 포크 운동이라 일컬어지는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참정권 운동과 반전 운동에 참여했던 젊은 세대의 마음을 흔들어놓은 건 분명했다. 하지만 점점 불어나기 시작하는 거대한 수식어들은 그를 불편하게 했다. “전설, 상징,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는 말은 모두 참을 만했다. 하지만 예언자, 메시아, 구세주라는 말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 호칭”이라는 딜런의 말은 충분히 이해가 간다. 딜런은 <노 디렉션 홈>를 통해 “내 음악은 정치적이 아니라 현실적이었다”고 말하고, 자서전에서는 “사람들은 내게 이 시대의 양심으로서 의무를 회피하지 말고 밖으로 나와서 그들을 어디론가 인도하라고 요구했다. 나는 내가 대변하고 있다는 세대와 공통적인 것이 별로 없고 잘 알지도 못했다”고 회고한다. <아임 낫 데어>의 잭은 딜레마에 빠진 딜런의 분신인 셈이다.
(Fourth Face) 로비by 히스 레저
“1964년 8월7일 뉴욕. 당신의 머리, 당신의 입, 당신의 눈, 당신의 입술을 원해.
난 사랑에 미칠 준비가 끝났어.”
한 여자가 뉴욕의 한 카페 구석에서 책을 읽고 있다. 그녀를 향해 주저 없이 다가가 대뜸 “혹시 프랑스 인이에요?”라고 묻는 남자의 이름은 로비, 나이는 22세. 직업은 꽤 잘나가는 배우로 촬영 중인 영화에서 ‘밥 딜런’을 연기하는 중이다. 히스 레저가 연기한 밥 딜런의 네 번째 초상 로비는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가정을 꾸렸던 시기의 딜런이다.

밥 딜런의 ‘I Want You’가 흐르는 가운데 로비와 클레어(샤를로트 갱스부르)가 다급하고 격정적으로 사랑을 나누는 장면은 <아임 낫 데어>에서 가장 영화적이지만, 감독은 실제 밥 딜런의 결혼 생활은 영화적인 해피엔딩과 거리가 멀었다는 걸 놓치지 않는다. 딜런은 늘 순회공연 중이었고, 아내 사라는 홀로 두 아이를 돌보며 외로움에 시달리다 결국 이혼한다. 오히려 “아내가 옆에 있어서 다행이었다. 아내는 내가 비참한 구덩이에 빠진 것이 아니라고 느끼게 하는 사람이었다. 아내는 항상 자신의 타고난 행복을 가지고 있었다”라며 아내와의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만 회고해 놓은 딜런의 자서전이 <아임 낫 데어>보다 훨씬 ‘영화적’이다. 딜런은 대중에게 자신의 가정 생활을 행복한 것처럼 연기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에서 토드 헤인즈 감독이 유독 이 시기의 딜런의 분신에게 ‘배우’라는 직업을 준 건 의도가 명확한 트릭이라 할 수 있다.
(Fifth Face) 주드 by 케이트 블랜쳇
“당신들이 듣는 건 영국 음악이 아니야. 알아? 당신들은 미국 음악을 들어본 적이 없군.
이런 생각에 동의하지 못하겠으면 집어치워. 나는 당신들을 믿지 않아.”
<아임 낫 데어>의 파격적인 구조와 아이디어에 설득당한 관객이든,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고개를 흔드는 관객이든, 밥 딜런의 사진을 단 한 장이라도 본 관객이라면 주드가 등장할 때 탄성을 지를 수밖에 없다. 검은 선글라스 뒤로 눈을 숨기고, 바짝 마른 몸으로 흐늘거리듯 걷는 신경질적인 표정의 창백한 딜런을 연기한 배우가 케이트 블랜쳇이라는 걸 알게 되면 그 탄성은 경의로 바뀐다. 장난꾸러기 토드 헤인즈 감독은 밥 딜런의 삶에서 가장 격렬했던 시기를 ‘여배우’ 케이트 블랜쳇에게 맡겼고, 블랜쳇은 앞으로 어떤 남자배우도 딜런을 연기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완벽하게 딜런을 재현한다. 2007년 베니스영화제 심사위원들은 블랜쳇에게 남우주연상을 줘야할지 여우주연상을 줘야할지 헷갈리진 않았을까? 여우주연상을 수상하긴 했지만 말이다.

주드라는 이름은 딜런의 1965년 영국 투어 콘서트 장소였던 ‘주다스(Judas)’에서 따온 것이다. 동시에 통기타와 하모니카 대신 전기 기타와 밴드를 선택한 딜런에게 쏟아졌던 ‘배신자 유다(Judah)’라는 팬들의 야유를 빗댄 이름이기도 하다. 감독은 딜런이 처음으로 밴드와 포크 록을 선보이는 장면을 주드와 밴드가 관객을 향해 기관총을 난사하는 것으로 묘사한다. 그만큼 관객에게 딜런의 새로운 음악은 도발이고 충격이었다. 주드를 통해 이 시기의 딜런은 싸움닭처럼 그려진다. “배신자!”라며 야유하는 관객을 향해 주드는 “무대 위로 올라와서 다시 한 번 말해보시지! 너희들은 모두 거짓말쟁이야”라고 달려들고, 노래에 담긴 메시지를 묻는 기자에게 “단지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을 말하게 하려는 거잖아. 내 생각을 누가 상관이나 할까? 나는 대통령도 아니고 나는 그냥 이야기꾼일 뿐이야. 그게 전부야”라고 말한다. 흑백 무성영화를 연상시키는 독특한 화면 속에서 비틀즈와 아이처럼 뒹굴며 놀고, 환상의 여인을 좇고, 차가운 수술대 위에 시체처럼 누워있는 딜런 혹은 주드, 아니 블랜쳇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아임 낫 데어>는 충분하다.
(Sixth Face) 빌리 by 리처드 기어
“세상의 종말을 기다려야 한다는 긴장감과 두려움이 갑자기 엄습했다.
내가 여기에 얼마나 오래 숨어 있었지? 나는 대답조차 할 수 없었다.”
서부극에서 막 튀어나온 것 같은 중년의 카우보이 빌리를 밥 딜런의 또 다른 분신이라고 짐작하게 하는 건 “그는 빌리 더 키드가 그랬듯, 총알을 피해 날쌔게 몸을 돌렸고 숨어버렸다”라는 대사와, 딜런이 출연했던 샘 페킨파 감독의 <팻 개렛 & 빌리 더 키드>(73, 출시명은 <관계의 종말>)를 떠올리는 것이 전부다. 리처드 기어가 연기한 빌리는 자신을 명쾌하게 설명하지 않지만, 딜런이 1966년 오토바이 사고 이후 은둔하다시피 모습을 감췄던 시기와 관련이 있다.

토드 헤인즈 감독은 “리처드 기어의 빌리는 미국 포크의 권위자이자 신화였던 밥 딜런의 숨겨진 얼굴이다. 빌리를 통해 특별한 존재로서가 아닌 딜런을 표현하기 위해 애썼다. 동시에 밥 딜런과 함께 사라져버린 1960년대의 정서를 무의식적으로 포함시키고자 했다”라고 설명한다. 감독의 말처럼 딜런과 함께 1960년대가 사라졌겠지만, 딜런은 2008년인 현재를 함께 살고 있는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내가 존재하기 위해 필요한 건 오직 포크 뮤직”이라고 말하는 딜런이 살아있는 한, 포크 음악도 죽은 게 아니다.
Appendix_ 딜런의 연인들
조앤 바에즈_앨리스 by 줄리안 무어
동갑내기인 포크 뮤직의 여왕과 황제는 서로의 재능을 알아봤고, 사랑에 빠졌다. 밥 딜런은 자서전에서 바에즈를 처음 만났을 때를 이처럼 회상한다. “그녀가 나의 상대역이고 내 목소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떨칠 수 없었다.” 그들은 무대에서 완벽한 조화를 이뤘지만 딜런은 자유를 원했고, 바에즈는 행동을 원했다. 결국 둘은 갈라섰고, 훗날 바에즈가 노래로 밥 딜런을 반박하는 관계가 된다. <아임 낫 데어>에선 줄리안 무어가 ‘앨리스’라는 이름으로 존 바에즈를 연기한다. 줄리안 무어는 <노 디렉션 홈>에서 보았던 바에즈의 어른스러움을 그대로 빼다 박았다.

사라 라운즈_클레어 by 샤를로트 갱스부르
바에즈와 헤어진 직후 밥 딜런은 첫 번째 부인 사라와 사랑에 빠졌다. 사라는 딜런과 두 아이를 낳았지만, 결혼 생활은 평탄치 못했다. 딜런의 순회공연 때마다 들려오는 숱한 외도설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내게는 이 세상 누구보다 사랑하는 아내와 아이들이 있었다. 그들을 지키고 먹여 살리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는 딜런의 자서전에 등장하는 사라보다, <아임 낫 데어>에서 어두운 방에서 싸늘한 표정으로 TV를 바라보던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훨씬 현실에 가까울 듯하다.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313&page=1>
<출처 : http://movie.naver.com/movie/mzine/cstory.nhn?nid=313&page=1>



